Purple Happy B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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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はなんで 立ち止まって 明日を待っていたんだろう

明日はきっと 明日をきっと 迎えにいくよ

 

 

어쩐지 블로그를 쓸 때만큼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적고 싶은 이상한 고집이 생긴다. 그래서 그런가 블로그를 쓰기까지의 과정이 참 길다. 물론 가볍게 쓰자면 가볍게 쓸 수 있겠지만, 글을 적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요즈음에는 더더욱 이왕 적는 글이면 묵직하게 적어 보고픈 맘이 생긴다. 6월 안에는 적어야지, 하던 걸 미루고 미루다 보니 벌써 7월이다. 아직 세상에 맨몸으로 부딪혀 본 적이 없는 탓인지 나는 아직도 내가 열아홉-여기서 만 나이는 차치해 두는 걸로 하자-그대로인 것 같다. 이따금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래도 역시 같은 공간에 강제로라도 묶여 지냈던 고3이 더 행복했었단 생각이 든다. 반가운 만큼 요원하게 느껴진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예상했던 대로 멀어져 간다는 사실이 슬플 뿐. 딱 그뿐.

항상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빈다. 아끼고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안부를 전한다면, 여전합니다! 나는 여전히 담백하고 단정한 사람이고 싶다. 모든 일에 의연하고 싶다는 이 바람이 오만임을 알면서도 여유롭고 고요한 사람이고 싶다. 한결같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가늠이 안 가는 것도 여전하다.

 

달라진 건 겨울까지 어깨에 닿지 않던 머리가 이젠 어깨에 닿는다는 거. 웬일로 몇 달 동안 잠잠했던 속이 다시 아팠고, 덕분에 한여름에 뜨거운 죽을 입에 들이밀어야만 했다. 유월이 수험생이 처지는 달이라고들 한다. 시기적절하게 나도 지쳤고, 그냥 그런대로 뒀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좋아하는 대로 뒀다. 인디를 한참 듣다가도 답지 않게 팝을 들었고, 어두운 힙합도 자주 들었다. 막연하게 새로운 걸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변함없는 나에게 진저리 나서. 사소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일상이 존재해야 비일상非日常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새삼 체감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도 어쨌거나 변함없이 욕심이 남는 건 역시 쓰는 일이다. 나는 줄곧 활자들이 엮여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되고 문장이 되는 순간들을 사랑해 왔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으로만 읽어 나가면 무슨 말인가 하다가도, 가만히 노리다 보면 문득 어떤 구절이 마음에 박히는 순간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시인들을 동경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저런 문장들을 쓰는 건 생득의 영역일까? 이런 생각들에 종종 갇혀서 울적해진다. 내가 살면서 절대 쓸 수 없는 문장 같아서. 음운 단위로 낱낱이 쪼개면 언뜻 의미를 알 것 같기도, 영영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저 읽은 시들을 미결로 남겨 두고, 시구절과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는 경험이 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며 읽는다. 적어 본다. 체득하려 애써 본다.

 

최근에는 여성민 시인의 웨하스라는 시를 읽었다.

이유를 말할 수 없어야 슬픔이구요. ...(중략)... 그리고 당신을 설명합니다 / 당신도 나처럼 관념적인 사람이라면 이별한 후에 우는 당신은 타인입니다 울고 나서 이별하는 당신은 타자입니다 / 타살인가요 / 괜찮아요 나는 내 집에 살아요 타인은 타인의 집에 살고요 그것이 문득 슬픈 날 있듯이

읽고 나서 타인과 타자와 타살에 대해 한참을 곱씹었다. 이유를 말할 수 없어야 슬픔이구요, 라고 말하는 문장도.

 

또 이기리 시인의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 오랜만에 시집을 구매했다. 나랑 비슷한 단어들을 쓰는 데 호기심이 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시집이었다. 이제 칠 월이 오니 다시 허연의 시집을 열어야만 하겠지.

 

예전에는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하는 물음에 지체 없이 ‘바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딱 바다만큼 산이 좋다. 바다만큼이란 말은 바다와 견주어서, 혹은 바다가 넓은 만큼 무한히 좋다는 두 가지 의미 모두를 함축한다. 얼마 전에 시간이 비어서 절에 다녀왔다. 정오를 조금 비껴 찾아갔음에도 장마 직전이라 그런지 날이 정말 더웠다. 피서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산에 들어서는 어귀가 조금 소란스러웠다. 어쩐 일인지 나는 혼자 지낼수록 사람이 많은 곳이 꺼려지던데… 그래서 그런가 조금 불편했다. 그마저도 산에 들어가고 나니 바람도 시원하고 숲의 향이 짙어져서 금세 좋아지긴 했다. 신실하게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절에 들어갈 때 산을 거쳐서 가는 그 과정이 좋아서 종종 찾아간다. 내가 바라는 고요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자주 하는 고민은 조금 더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긍정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다. 어딘가에서 언뜻 보기로는,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서 우리를 금세 우울감에 빠뜨린다고 한다.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결국 끝은 자기혐오에 닿는다. 감정의 밑바닥부터 나 스스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생각들로 밤마다 울지 않는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는 바짝 마르게 된 것 같긴 하다. 화를 참을 수 있는 게 어른이라면 나는 열일곱부터 진작 어른이었을 거다. 눈물을 참을 수 있는 게 어른이라면 이제 막 어른이 되고 있는 거겠지?

 

가끔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 자주 가벼운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 남도 나에게 뭘 바라지 않고 나도 남에게 바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혹자로 이방인으로 살고 싶다. 사람은 절대 홀로 지낼 수 없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사람들과의 상관관계에 숨이 턱턱 막히고는 한다. 이제는 그만 이 불가분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러한 내가 배덕한가. 보통의 나날들은 어땠더라. 내가 너무 어렵게 살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에겐 아무렇지 않을 일들을 나 혼자 괜히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마냥 생각하는 중은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한다.

 

적당히 나를 매도하고 적당히 나를 아껴줄 수 있는 경계. 내내 그걸 찾으면서 살고 있다. 몇 해를. 나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덕분에 딱 그만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를 아끼는 것만이 모든 답이고, 나의 결핍을 딛기 위한 유일한 방도라는 것도 안다. 내 스스로 끝맺어야만 하는 일이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미룬 소설이다. 이 책으로써 오로지 내 몫으로 가지고 있는 책장에 황정은 작가의 소설이 두 권을 차지하게 됐다. 디디의 우산과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란히 꽂힐 것이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기생충을 본 뒤로는 맘껏 좋아하지도 못하게 됐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재앙 같을 수도 있는 거니까. 비를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나의 특권이니까. 함부로 생각하지 말기, 함부로 살아가지 말기. 이 책은 언젠가 닥쳐올 먼 미래를, 함부로의 마음들을 내게 다시 일깨워 줬다. 감사한 소설이다.

 

살다 보면 허무함과 덧없음에 무너지게 되는 순간들이 잦은데, 앞으로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책 제목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피와 사랑을 이어나가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제목과 정말 잘 어울렸다. 소라나나나기. 중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이어지니까. 사랑도 사람도 삶도 계속되니까. 세대는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 않으니까.

 

비 내린다*.

다시 일상.

나프탈렌 향이 날 것이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212p

 

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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